저는 올해 안식년 중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지도 벌써 6개월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외국에도 다녀오고 싶었고, 여러가지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막상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 큰 선물인 것 같아서 계획을 다 포기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일하며 준 분도회 회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에는 제가 속해있는 성 바오로 수도회 재속회 피정에 다녀왔습니다. 참 은혜로운 피정이었는데 피정 중 묵상했던 내용들이 오늘 말씀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수녀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몇 사람이나 구원되겠는가를 물었는데 예수님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구원의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구원을 내가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아들이는가?’
구원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를 만나러 들어가야 할 문이 “좁은 문”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은 단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걸어야 할 여정입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이 구원의 여정은 단 하나의 길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은 예수님이 걸으신 길, 즉 예루살렘을 향한 길, 골고타 언덕 길을 따르는 노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큰 고통과 어둠, 외로움의 순간이었지만, 그 길은 곧 부활의 빛으로 가득한 구원의 좁은 문을 활짝 열어주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 좁은 길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삶의 현실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피정 중에 제게 큰 힘이 되어준 말씀이 하나 있었는데, “모든 것”이라는 한 단어였습니다. 오늘 본기도에서 “모든 것이 변화는 이 세상”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오늘의 현실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는 상황이고 이러한 모든 상황을 마주하기에 참 힘든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제가 묵상했던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나와 하느님께로 돌아가시는 여정을 하시기 전에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셨다.” 이 말씀의 상황은 최후 만찬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마음을 먹은 직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제자 유다의 배반이 얼마나 마음 아프고 힘드셨을까요? 삶의 여정에서 유다는 늘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유다는 결국 예수님께서 가시려고 하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당신을 늘 거부하는 유다로 인해 십자가의 고통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인내하고 걸으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모든 것은 바로 하느님은 영원하고 한없는 충만한 사랑입니다. 유다의 거부와 배신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묵묵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당신을 배신하게 될 제자들의 죄까지도 모두 씻어 주십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으려는 노력은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열망이기도 합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의 길을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에 의지하며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콜로새서 3장 11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이 고백 뒤에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모든 것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미움과 질투, 거짓과 교만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순간 순간을 하느님의 모든 것으로 바꾸어 내셨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어 단 하나의 바른 길, 예수님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느님의 모든 것’은 또한 성령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 2장 10절에서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이 ‘하느님의 모든 것’으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십니다. 또한 코린토 1서 13장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하느님의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견디어 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모든 것으로 모든 것을 덮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모든 것으로 덮어주고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구원의 표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는 곳곳에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 모든 곳을 하느님의 모든 것으로 바꾸어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