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2025년 7월 13일) - 주영일 스테파노 신부님(광주대교구)

홈지기 2025.07.14 03:24:59

신명 30,10-14; 콜로 1,15-20; 루카 10,25-37

 

. 찬미예수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 이해해도, 살아가면서 받아들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듯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복음에서 전해집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그 의도를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라고 되물으십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정답을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율법교사는 전문가답게 사랑의 이중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화에서 율법교사가 “네! 그렇군요. 그렇게 살아가야겠습니다”라고 답하면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았다면, 다시 말해서 ‘아! 내가 율법을 잘 알고 있으면, 아는 대로 살아가지 못했구나’라는 자기반성을 했다면 대화는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는 묻습니다.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느님 나라와,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녕 누가 제 이웃인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이 생각하는 이웃은 자신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같은 신앙과 혈통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한편 이웃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다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모든 이방인들, 또한 같은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죄인들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는 세리, 창녀, 사마리아인, 나병 등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 등이 속합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이들과는 이웃이 아니기에 식사나 대화를 꺼려하고 아예 상종하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이웃 개념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유다인들이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들이나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고, 치유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 속 율법교사는 율법의 이웃에 대한 정의를 물으면서 예수님께서 틀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고 질문한 것입니다.

 

율법교사와 같은 사람은, 같은 말을 들어도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입니다. 상대방의 조언도 듣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반박하며,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해주지만, 머리로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나 하는 망막함과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면서, 동시에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고, ··· 사제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제로 살고 싶은가? 겸손한 사제, 소통하는 사제, 친근한 사제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생각한 바를. 아는 것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고 싶지만 가난한 사람은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움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자리합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때로는 그 가난이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살지만,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애써 자기 위안과 변명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때로는 내 생각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치어 살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하라고 했으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각합니다. 수동적인 존재는 되지 말자라고 말입니다. 업무는 수동적이되, 내 삶은 능동적으로 사제로, 인간으로 좋은 이웃,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살아내자고 말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 주님의 은총이 나와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넘치길 청하며 미사를 이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