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2025년 5월 18일) - 조발그니 빈첸시오 신부님(광주대교구)

홈지기 2025.05.19 05:04:18

부활제5주일 요한 13,31-35

 

비가 여름 장마처럼 쏟아지고 이제 여름에 다가서나 봅니다. 저의 집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청명하게 들리고 굵은 두꺼비인지 황소개구리인지 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보리는 더 푸르고 여기저기에 물을 막아 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웃들이 바빠졌습니다. 한동안 여유롭게 지내던 분들이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십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습하고 바람마저 도와주지 않는데 더 바빠지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땅을 지키는 이웃들의 모습에 계절의 변화를 배웁니다.

 

오늘 복음을 여러번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실 수 있지 싶어 정말 이 말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싶습니다. 게다가 복음이 위치한 자리도 그러합니다. 앞으로는 유다가 곧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눈치도 없이 당신의 유언이며 새로운 계명으로 사랑을 말씀하실 수 있을까? 이분이 정말 죽음이 코앞에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어서 복음을 또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생각이실까? 이분은 인간이지만 하느님이시기에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앞에 있는 13,21절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산란하셨다고 기술합니다.

 

저는 작년 1년을 이 놈의 사랑 때문에 아프고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사랑을 해야하는데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사랑이 명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여러번 투덜거렸습니다. 데이비드 번즈라는 사람이 실험을 했답니다. 한번 해보실래요? 누구에게나 싫어하는 사람 혹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심한 경우 제발 미사 중에는 적어도 성당 근처에서는 보지 않기를, 그래서 지구를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겠지요. 자 마음 속에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잠시 생각해보세요. 그런 다음 내 앞에 단추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나는 그 사람과 즉시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도를 드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그것 때문에 성사를 볼 필요도 없어요. 그냥 단추만 누르면 큐피트 화살에 맞아 갑자기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자 단추를 누르실래요?

저는 지금은 누르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사랑 비슷한 아니면 용서를 청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지금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놈의 사랑을 유언으로 더하여 어디 법령에도 없는 명령으로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얼마나 급하셨는지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입니다. 이제 조만간 자신을 잡으러 유다를 앞세워 올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하는 마지막 말일 수 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긴급하고 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새 계명이며 마지막 계명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부활 후에 제자들을 파견할 때나 치유를 하고 사람들을 보낼 때 가라는 말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법령에도 없는 사랑하라는 것을 계명으로 주십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부를 때 얘들아라고 부르시면서 말입니다. 유명한 신약성서학자 피츠마이어는 이 얘들아라고 부르는 그리스말 테크논이 하느님이 인간을 부르는 가장 사랑스러운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의 예로는 루카복음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삐져서 보십시오라고 부르는데 그 큰 아들에게 아버지가 타이르며 하는 얘야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당신을 죄다 배신한 제자들을 가장 사랑 스럽게 부르며 너희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희를 너무 사랑하니 내가 너희에게 사랑을 남긴다 그러니 너희는 정말 서로 사랑하라 이게 나의 유언이다 하신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예수님께서 몸소보여주실 것이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참 힘들다는 것도 앞의 실험을 통해서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 사랑으로서 아가페라는 그리스어를 쓴다는 것도 어림 짐작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나,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스토커의 외사랑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정도로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그리고 그것이 쉬운 일이니 아니니 새로운 계명입니다. 또 그래야만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된다고 합니다.

 

쉽게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쉽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도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도 잘알고 있습니다. 수도원 이름에 사랑이라는 붙은 것도 제가 사는 집에 사랑이 붙는 것도 하기 쉬워서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불리게 될 때 인식하고 잊지 말라는 의미라 여깁니다.

 

518의 아침 사랑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또 사랑을 말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복음이 또 말하게 합니다. 저역시 이젠 피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아야 할 말이되었네요. 서로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은 정면으로 이 말에 맞서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