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2025년 3월 9일) - 김경민 판그라시오 신부님(제주교구)

홈지기 2025.03.09 20:25:43

루카 4,1-13 

 

Sic transit gloria mundi.” “세상의 영광은 이렇게 지나간다.”

 

1409년 대립 교황 알렉산데르 5세의 교황 대관식에서 처음 등장한 이 표현은 이후 1958년 요한 23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교황 대관 또는 취임 예식 때 사용되었다. 신임 교황은 고귀하게 장식된 의전 가마에 타고 제의실을 나와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가는 행렬을 시작한다. 이 행렬은 도중에 세 번 멈추는데, 그때마다 예절 담당 사제가 의전 가마에 타고 있는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은이나 놋으로 만든 기다란 작대기에 걸린 천 조각을 불에 태우면서 크고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Pater Sancte, sic transit gloria mundi.” “교황 성하, 세상의 영광이 이렇게 지나가나이다.” 삼중관을 쓰고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에 앉아 다른 이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교황에게 인생의 덧없음과 세속 영광의 허무함을 일깨워주는 짧지만 강렬한 순간이었다.

 

요한 23세를 끝으로 이 예식은 사라졌지만, 이는 그 뒤를 이은 베드로의 후계자들이 세속 영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이 예식에는 숨은 독소가 있었으니, 세속 영광의 도취를 경계하라는 바로 그 예식이 교황의 높은 지위를 이미 인정하는 셈이고 자신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만큼 고귀한 지위에 있음을 만끽하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예식보다 실제 삶이었다. 한순간의 다짐이 아니라 멀고 고단한 길 위에서 한 걸음씩 발을 옮겨가는 일이었다. 교황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똑같은 제자임을 자각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바로 그 행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교황들은 세속 영광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예식에서 현실의 삶으로 눈을 돌려 그런 영광의 부질없는 자국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더 이상 삼중관을 쓰지 않고 의전 가마에 타지 않았으며, 화려한 옷과 신발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교황의 거처마저 교황 ‘궁’에서 바티칸에 찾아온 손님들이 쓰는 일반 숙소로 옮겼다. 그분들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이루는 일치의 중심이고 우리 모두의 존경과 예우를 받을 만한 분들이지만 지배와 통치의 유혹을 뒤로 하고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걷고자 애를 쓰셨다. 

 

그분들이 보여주셨던 소박하고 개인적인 노력은 우리의 자존심과 허영심을 부채질하는 온갖 유혹에서 우리가 어떻게 돌아서야 하는지 본보기가 되어준다. 그것은 광야의 예수님께서 빵, 권세와 영광, 천사들의 도움을 미끼로 악마가 던진 유혹에서 어떻게 등을 돌리셨는지 몸소 보여주신 그 모습과 이어져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하느님만을 올곧게 섬기며,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느님을 시험하는 일 없이 그분께 모든 희망을 두는 것. 예수님은 바로 이런 태도 위에 우리가 두 발 딛고 서 있음을 일깨우셨다. 부질없이 지나가 버릴 영광의 바람이 우리를 흔들 때마다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대지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재촉하신다. 구태여 누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천을 불태우며 “세상의 영광이 이렇게 지나가도다”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건드리시고,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잠든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가 되어준다. 

 

감히 교황 의전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미사를 집전하는 주례 사제에게도 세속 영광의 유혹을 경계하며 깨어 있으라는 일침의 순간이 있다. 사제가 속으로 개인 기도를 바치는 때이다. 조금 전 복음 봉독을 준비하면서 나는 제대에서 허리를 굽히고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조금 뒤 제대에 예물을 차려 놓은 다음 손을 씻으면서 나는 기도할 것이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미사성제를 봉헌하지만, 그 영광이 결코 자기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이런 식으로 자꾸 되새기는 것이다. 여기서도 관건은 실천이겠다. 내 마음과 입술과 허물과 잘못을 깨끗하게 해주시는 주님께 대한 신뢰 속에서 나의 생활을 깨끗하게 일구어 나가는 일은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나 홀로 바쳐 올릴 또 다른 희생 제사이다. 

 

이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누는 여러분도 각자의 영혼을 일깨우는 예식과 실천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듣고 무엇을 하든 오늘 광야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의연한 모범을 닮아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은총의 사순 시기 보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