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6,39-45
유가의 가르침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예禮(인간관계에서 지녀야 하는 행동구범)가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가 기울고, 의義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가 없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염廉 (청렴, 검소한 생활)이 없어지면 나라가 전복되고, 치恥 (부끄러움)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가 기울면 바르게 고칠 수 있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다시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나라가 전복되면 다시 일으킬 수 있으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루가복음 평지설교 일부로, 남에 대한 비판과 판단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소경의 비유와 들보의 비유, 그리고 나무와 열매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 두 가지 비유는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쉽게 발견하고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큰 결점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먼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신 의도는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층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행동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종종 율법의 세칙에 얽매여, 율법의 참뜻을 보지 못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전부 아는 양 행동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질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오늘 소경의 비유와 들보의 비유는 우선적으로 백성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잘못, 즉 스스로 남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들을 의인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반성하기에 앞서 남을 판단하는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한 질책입니다.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며 교육자와 지도자가 학생을 가르치는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 유산의 계승과 발전, 개인의 인격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요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가르침과 배움의 현장에서 가르침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데 가장 주요한 요인인, 지도자의 겸손함과 개방성을 지니기 위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타인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르침은 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정한 개혁과 회심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들이 가지는 뜻입니다.
오늘 이 복음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질책을 들으면서, 앞의 유가에서 최고의 덕으로 여기는 부끄러움의 덕, 염치, 몰염치, 파렴치한 지도자의 모습이 이 나라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 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 때 필연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만이 타인의 길잡이라는 오만함과 타인을 판단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개혁」 이 아니라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와 「부끄러움」 이 무엇보다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며, 우리의 마음이 선해야 선한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은 자기 성찰의 중요성과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 자신의 큰 잘못은 보지 못하는 위선자적 태도를 버려야 하며,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므로, 마음을 선하게 가꾸어야 함을 일러주십니다. 결국 이 구절은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