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2025년 1월 5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5.01.05 23:41:06

2025년 희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번째 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란 동방의 박사로 표현된 세분의 이방민족에게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심으로써, 온 인류의 왕이요,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예수님께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습니다. 왕의 모습으로 한 이방인의 무리가 오직 별만 보고 머나먼 길을 따라옵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버리고 별을 따라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 그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자는 그들의 소리에 술렁이기 시작하고 간교한 유혹을 제안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자신들이 보고자 했던 분을 만나고 사라집니다.

 

그들이 점성술사였는지, 박사였는지, 왕이었는지는 그다지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복음사가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아들을 부정했던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맞아들이기는커녕 그를 죽이려고만 하였고, 오히려 이방의 민족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였기에, 이방 민족이 참된 하느님의 백성임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이 복음의 목적이 담겨있습니다.

 

마태오복음사가는 그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고 했습니다. 별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의 징표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오복음사가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위 인간을 인도해 주시고 온갖 위험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시고 끝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도 내 안에, 내 옆에, 내 생활 속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손길과 징표를 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베들레헴의 작은 말구유에서 터져 나온 생명의 빛은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였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어린 아기 모습으로 가장 비천한 곳에, 가장 낮추어진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에 대하여, 그 하느님의 방식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오늘 우리는 이 하느님의 방식을 제대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스스로 모든 이를 위하여 가장 무력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모습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가장 작은 이, 가장 서러운 이, 가장 볼품없고 가장 내세울 것 없는 이의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셨습니다. 여기에 우리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구유의 신비입니다. 아니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이 놀라운 하느님의 방식을 우리는 그냥 신비라고 지나쳐선 안됩니다.

 

구유는 바로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돌려주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구유 앞에서 우리가 오늘 선포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구유와 저 십자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박사들처럼 용기 있게 걸어가는 지혜를 배웁시다. 아무리 고달파도 희망을 가지고 참고 견뎌내는 믿음을 가집시다, 고통을 고통으로만 끝내지 마시고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의 언저리까지 그 빛을 따라 마지막 한 걸음까지 걸읍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도 결국 채워질 것입니다.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님은 희년 선포 칙서에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시작의 말씀에 이어 ,,이 희망은 주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목표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는 한결같은 길동무입니다.”(희년선포 칙서 5)라고 하십니다.

오늘 공현 대축일에 우리의 길동무가 된 동방박사를 따라 우리도 하늘나라의 아버지를 뵙게 되는 그날까지 참고 견디어내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올 한 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별이요, 우리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2025년 새해에도 매일 처음처럼하루하루가 그분께로 나아가는 소중한 선물로 생각하며, 우리 마음 안에 환하게 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마지막으로 저는 새해 덕담으로 매일 우리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말씀을 헨리 나윈 신부님의 저서 삶의 영성에서 몇 구절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는 사랑받는 자다.” 그 진리를 듣는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참된 정체성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타인과의 관계로 이어져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 안에서 기쁨이 싹트고, 그 기쁨이 우리에게 양분을 주고, 희망을 회복시켜 주고 일상의 고난과 역경을 안고 살아갈 힘을 줍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 우리는 마침내 밖으로 나아가 긍휼의 사도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은 인생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삶에 풍성한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어떻게 나를 하느님께 완전히 내어드릴 것인가?”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