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 1 독서 욥기에 등장하는 고통의 이야기, 2 독서 전교 때문에 당하게 된 바오로의 고통과 복음 역시 숱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선포되는 연중 제5주일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을 생생한 고통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서의 출발도 사실 ‘고통’에서 시작합니다. 왜 인간에게 고통이 존재하는가를 3000년 전에 물었던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이 바로 성서입니다. 성서의 사람들에게 고통은 죄의 결과였습니다. 창세기의 시작을 보십시오. 따먹지 말라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남자에게,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하십니다. 여자에게도 마찬가집니다. ‘너는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되리라.’ 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시작과 함께 고통이 존재했습니다. ‘죄의 결과인 고통’ 그래서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고통당하는 이유는 죄가 많아 그런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든 인물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인들과 상종하기만 해도 함께 부정 탄다고 근처에도 가지 않던 무리들 속에 홀로 죄인들과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병들었다고 죄인 취급당하고, 가난하다고 죄인 취급당하고, 여자라고, 세리라고, 배운 것이 없다고 사람 취급 못 받던 그들을 얼싸안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았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서에 참으로 많은 치유 사화, 병고침 기적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처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은 오직 하나,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그들에게 제외되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요, 그렇게 살아도 살 맛없던 인생들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새로운 인생, 새로운 생명을 되찾게 되었음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기적의 자리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자꾸만 기적을 앞세우면 우리는 용한 예수는 만날지 몰라도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성공을 바라며 출세와 건강을 원합니다. 이 얼마나 역설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정신없이 그 고통을 없애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이 예수를 알아본 것은 마귀들이었습니다. 영의 존재들이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고통 앞에서 다릅니다. 세상은 고통을 피할 궁리를 합니다. 점을 보고 부적을 붙이고 굿판처럼 세상을 삽니다. 그래서 제 편할 대로만 살고 싶어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불행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 각종 어려움을 겪으면서 삽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인간은 성숙하고 깊이도 가집니다.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여주려 하셨습니다.
고통이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이 있으십니까?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이겼고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말씀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는 구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선교활동의 비밀이 바로 이 성경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른 새벽 밤늦도록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외딴곳에서 그분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일을 할 용기를 발견합니다. 그 외딴곳은 당신의 선교활동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외딴곳이 없는 우리는 모든 활동은 공허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타이르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바쁜 삶을 살면서도 결코 기도를 잊지 않으셨기에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계심을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병고와 온갖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고통과 죽음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고통은 천국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는 의미 없는 고통과 죽음은 지옥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인간을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가 겪고 있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좀 줄여 주거나 없애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대신에 주님은 우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마침내 우리의 모든 고통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십자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기쁨이요,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