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든 가을 산이 아름답습니다. 제때에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마지막 남은 잎마저 색깔로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단풍들을 바라보면서, 영생의 희망을 가진 노년도 이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이제 이 아름답기만 하던 단풍잎들마저 떨어져 내리고 생명 있는 것들이 다시금 대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은혜스러운 11월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참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오늘 성서는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의 모든 말씀은 기도와 생활의 일치로써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을 사는 동안 제자와 스승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산다는 자체가 온통 배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한 분이신 스승을 닮아가야 할 중단 없는 전진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형성될 때까지”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성웅 간디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첫 독서와 복음에서는 이런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거친 음성의 분노와 책망과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1독서와 마찬가지로 수난의 길을 앞두고 갈릴레아에서 마지막 가르침을 종합하는 심판 설교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제자들과 군중들을 위해서 그리고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이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상 온유하신 예수님은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 약자를 얕보며, 자기만 잘난 체하는 사람의 위선과 거짓을 보시고 맹렬한 책망과 분노를 터트리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교회의 장례를 위해서, 특히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 사제, 수도자, 본을 보여야 할 모든 사람, 부모, 교사, 대부 대모 등을 염두에 두고 위선의 가면을 벗으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 중 그분의 가르침과 행동에 불만을 품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 수없이 애써온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의 말씀은 잘 알고, 특히 율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웃의 곤경에는 어떤 책임도 없는 것처럼 처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서로 분리시키는 행위를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여겼습니다. 바로 그런 행위가 위선이며, 우상숭배였던 것입니다. 길릴리의 전도를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이런 신심으로 살아가는 종교인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이용하여 자기를 앞세우고 남을 앝보고, 무시하며, 율법의 정신인 사랑보다, 율법의 법조문에 묶여 형식주의에 사는 당시의 지도자들과 예수님은 정면 대결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첫 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예수가 보여준 삶이며, 예수가 인정해 주는 유일한 위대함입니다.
가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놓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언제나 나누고 낮추는 비우고 베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아량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과 하나 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교회, 참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는 마음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낮춘 눈높이,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 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의 공간이 됩니다.”
가을의 들녘의 벼이삭을 보면서 그리고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산처럼, 저마다 우리도 자신을 낮추고 작은 사람들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아멘
오늘은 매달 소개하는 시편 대신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바람 속에 답이 있다네 Blowing in thw Wind'라는 노래 가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이미지와 저항과 자유, 변화의 아이콘등, 민권 운동가, 반전 운동가인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기성 사회질서를 벗어나는 평등과 자유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그가 23세의 나이로 1962년도에 발표한 이래 수많은 시위 특히 1963년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Martin Luther King Jr. 목사님이 주도한 워싱턴 대행진과 반전운동의 시위 행진가로 유명합니다. 2016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처럼 어수선한 이 시대에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입니다.
1절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Before you call him a man?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모래밭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영원히 포탄사용이 금지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2절
Yes, ‘n’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산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서있어야
Before it's washed to the sea?
바다로 씻겨갈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살아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도대체 얼마나 여러 번 고개를 돌려야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보이지 않는 척 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3절
Yes, ‘n'’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사람은 얼마나 여러 번 올려다 봐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하늘을 볼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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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Official Audio)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