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일(2023년 10월 1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3.10.02 00:11:38

10월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성취와 감사의 달입니다. 일 년에 가장 좋은 달, 5월과 10월 매괴성월,  성모님과 함께 하는 달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남을 무시하고 가난한 이들을 등쳐먹는 유다인의 지도자인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독선과 위선을 바로 잡으려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채찍으로 환전상의 상을 엎으시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십니다. 그 후로 기득권을 상실한 위험에 처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행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은 비유(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드시는데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 하나인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의 위선과 허위를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자기들의 잘못을 끝까지 뉘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들을 비유로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비유의 결론은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입니다. 이 얼마나 큰 모순이고 충격적인 말입니까? 유다인들이 지도자요, 신심 깊은 이들이 도둑이나 창녀보다 못하다니, 오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도둑이나 창녀는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뉘우쳤지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회개하지 않고, 언제나 남을 업신여기고 편가르고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착한 생활을,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하지 못했는지 가 구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 보여주신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그러니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소식입니다. 사실 주일은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여기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이 땅에서 얼마나 성공한 삶을 살았는가, 얼마나 많은 착한 일을 했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왜? 나를 세 번씩이나 배신하였는가?를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들켜 끌려온 여인에게 너는 왜 그런 큰 죄를 짓었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은 지극히 선하시고 자애로운 분이시고 그래서 세리들과 죄인들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조차 한몫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우리에게 세 가지 가르침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느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나약함, 죄스러움, 완고함으로 파괴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회개의 핵심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회개란 우리의 생각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항상 감동을 주고 새로움을 주고 항상 기쁜 소식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은 오늘 유다인의 지도자들이니 바로 우리에게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끝없는 시작의 삶을 살라고 오늘 주님은 여기 우리를 불러 주셨음에 감사드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은혜로운 묵주기도의 달을 맞이합니다.

 

이달의 시편은 현제의 믿음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 시편 131편입니다. 이 시편은 주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차있는 마치 “어미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신뢰 시편이며 12번째 순례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3절로 구성된 아주 짧고 아름다우며 깊은 내적 평온과 평화가 넘칩니다. 이번 기회에 꼭 외워보고 싶은 시편입니다. 시편 131편의 전체적인 의미는 평온하고 신뢰에 찬 분위기로 겸손에서 나오는 성숙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머니와 그녀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교훈을 주며 세상의 헛된 명예와 부와 권력을 뒤로하고 온전히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무는 시인의 모습은 참된 신앙인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며 우리도 내적 평화와 고요함을 누리기 위해서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는 어린이가 되어 어미 품에 안긴 어린이인 듯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리라고 노래하며 이 시인과 하나 되어 주님 안에 머무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