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수 있다면,

이경민수녀 2011.12.17 02:11:19
+나의 하느님은 하느님

이틀 전, 대학 신문사에서 함께 기자를 했던 선배언니를 만났습니다.

그 언니가 38년 전, 대학때부터 보냈던  내  모든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주어

요즘 시간있을 때면 읽고 있습니다.

엣 생각이, 그리고 그 때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그 때 읽었던 책, 보았던 영화, 들었던 이야기, 그 때 나의 느낌. 너무 새롭고 전혀 기억이 안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망각이 좋은 것일 수도 있구나, 시간의 흐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1977년 12월 20일 입회했는데 같는 해 11월 1일 이런 시를 적어보냈네요.

하느님께 열정이 타오르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세찬 겨울

죄악처럼 아픈 바람과

녹슨 이성처럼 굳은 벽 앞에서

 

당신의 울음을 들어

한껏 울리는 종이 될 수 있다면,

 

끝을 남기지 않은 바다

한없이 깊어지는 심연의 물길 속에서

당신 파도에 의해 부서져버린

작은 모래알이 될 수 있다면

될 수 있다면,

 

짙은 어둠

굵은 빗줄기 속에서

당신 불씨를 받아

꺼지지않고 타는 모닥불이 될 수 있다면,

 

골로다로 오르는 언덕

그 힘겨운 삶의 중량을 지고가는,

허덕이는 당신을 위해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다면,

한 줄기 솔바람이 될 수 있다면

아니,

당신 발끝을 쓰는

마른 풀잎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