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길을 가네.
슬픔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느라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디를 헤매다 왔는지
몸도, 마음도 제 길을 가지 못했네.
가슴 저리도록 황홀한 노을의 인사에도
훈훈하고 감미로운 바람의 노래에도
내 눈과 귀는 먼 허공만을 맴돌고
그리운 이들이 손을 내밀어 잡아도
사랑하는 이들이 어깨를 안아주어도
춥고 쓰라린 마음을 애써 숨기며 웃었네.
사라진 이들의 얼굴을 새기고 또 새기며
기도와 침묵 속에 숨어 눈물지은 아픈 날들.
소리 내어 신음조차 뱉을 수 없는 시간들.
이제 영원의 길에서 빛나는 별 다시 떠올라
일상의 수레에 크고 작은 가시들을 쌓아가며
한걸음 한걸음씩 발길을 옮기네.
(2010.1.13)
+ 나의 하느님은 하느님
얼마 전 한 수녀님께서 오랫동안 이곳에 시가 안 올라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고만 대답했지요.
그동안, 11월 말에는, 수도생활 중 20여년을 함께 한 양노린 수녀님을, 그리고 12월 1일에는 탄생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와 함께 하신 어머니를 하느님 곁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저는 두 분 모두 임종의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고 또 고통을 벗어나 빛나는 얼굴로 미소지으시며 떠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 분이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손을 잡으셨음이 너무나 분명한 모습이었는데도 제게 다가온 것은 저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지독한 상실감과 슬픔이었습니다.
이제 조금 벗어날 수 있으니 시를 쓸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