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일, 복음서의 진수요, 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라 일컫는 마태오복음 5장 산상설교의 시작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며,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고, 누가 참으로 행복한 자인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시고, 참된 행복으로 초대하는 행복선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산상설교의 시작 말씀에 이어, 진정으로 행복한 이가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십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십니다.
첫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사는 행복한 우리를 가리켜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 온유한 이, 자비를 베풀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우리 크리스챤은 이 땅이 하느님의 나라,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가는 사람으로 맛을 내는 사람, 세상의 부패를 막는 사람, 한 마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 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소금 그 자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 녹아 죽어 없어질 때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죽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하십니다.
두 번째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빛으로서의 삶, 소금은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빛은 반대로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빛의 속성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높은 데서 온 집안을, 온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 절망적이고 죽음과도 같은 세상은 빛을 갈망합니다. 이제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예수님의 출현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지도자와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다른 행동을 하시고, 다른 삶을 사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어두움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이것이 빛의 역할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고 사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신앙은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만큼, 충격을 줄 만큼 다르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범이 되어, 우리를 보고 놀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오늘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한마디로 자신을 태우고, 자신을 녹이는 소금이나 촛불처럼, 자신을 내어주고 나누고 바칠 때 세상은 맛있고 밝은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시 중에 ‘꽃피는 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 ‘남 하는 대로’, ‘나 하나쯤이야’, ‘누군가 하겠지’라는 말이고요.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나 하나만이라도’, ‘내가 있음으로’, ‘내가 먼저’라는 말입니다.” 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구체적으로 빛의 역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굶주리는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를 입혀주며, 곤란한 자를 도와준다면 그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남을 위한 삶보다 더 큰 빛은 없습니다. 따스한 눈길과 친절한 말 한마디로 우리는 빛을 비쳐 줍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랑과 평화의 희망을 살아가고 이 희망을 우리 주위에 비추어 주라고 복음의 가난한 이들인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은 ‘나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살고, ‘내가 있음으로’ 모두 행복해지고, ‘내가 먼저’ 나누고, 바치고 사랑하고 용서함으로 서로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라 하십니다.
오늘 미사에서 자신을 내어 바치시는 예수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면서, 우리도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침으로써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 하도록 기도합시다.
새로 시작한 2월, 한 달 동안 하느님의 놀라움과 인간의 고귀한 품위를 노래한 시편 8편에로 초대합니다. 짧으면서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 시는 하느님의 묘하심과 함께, 우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주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것도 모자라 우리를 생각해주시는가를 외우며 축복의 시간들을 보내십시다.
“오늘의 시편”에서 시편 8편을 외워보겠습니다.
시편 8편
뭐라 형언하리이까?”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놀랍고 굉장하신 분!
뭐라 형언하리이까?
어디를 둘러보아도
당신 장려(壯麗)함의 영상(映像)들,
귀 기울이면 당신 이름 뇌옵니다.
별들로 수놓은 밤하늘을 우러르며,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헤아리고,
나에 대한 창조주의 배려 곰곰이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당신이 친히 나를 염려해 주시나니,
말문이 막히옵니다.
하느님, 당신은 나를
당신 모습대로 만드시고,
당신 아들이라 불러주셨습니다.
세례로 생명의 길로 이끄시어
당신과 함께 거닐게 하시고,
당신 창조사업(구원사업)에 참여할
기상천외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오,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놀랍고 굉장하신 분!
뭐라 형언하리이까?”
공동번역 시편에 “셀라”라는 말이 72번 나오는데 ‘잠시 멈추어서 묵상하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3편 4절이 처음 나옵니다. 잠시 묵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