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기다리는 날에

이경민수녀 2007.12.19 19:24:59

 




씨앗처럼 작은 모습으로 잉태되어


눈코가 생기고


손발이 생기고

마침내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


 


삶의 터전을 잃고


복구할 희망까지 잃어버린 이들,


사방이 철조망에 둘러져


매일 던져주는 물자로


겨우 목숨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는


이 땅에 오십시오.





여기저기 폭탄이 터지고


무차별한 총알이 쏟아져


죽어버린 가족을 안고 울부짖는 이들.


양심을 팔 수 없어 죽음보다 더 지독한


수치를 당하며 온 몸을 떠는 이들이 있는


이 세상에 오십시오.





그리고


그리고


스스로의 행복에 취해


주변의 슬픔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들이


공존하는 이 땅에 오십시오.








 


수천 년을 기다려


겨우 인류의 역사 안에 모습을 드러내신


불쌍하고 가련하신 하느님!





기다림밖에 다른 방도가 없고


약속이 무엇인지 기억도 못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잃어버려


침묵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는,


비천하고 황폐한 이들이 많은


이 땅에


함께 머무시러 오십시오.





오늘 


시커먼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


유유히 놀던 바닷고기 질식해 떠오르고





지금 


바람조차 흐르지 못하는 혹독한 공기


하늘을 가르던 갈매기 숨 막혀 쓰러진


이 땅에





당신이 보시고 아름답다고 찬탄한


이  둥근 땅에


또다시 십자가를 지러 오십시오.    (200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