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처럼 작은 모습으로 잉태되어
눈코가 생기고
손발이 생기고
마침내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
삶의 터전을 잃고
복구할 희망까지 잃어버린 이들,
사방이 철조망에 둘러져
매일 던져주는 물자로
겨우 목숨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는
이 땅에 오십시오.
여기저기 폭탄이 터지고
무차별한 총알이 쏟아져
죽어버린 가족을 안고 울부짖는 이들.
양심을 팔 수 없어 죽음보다 더 지독한
수치를 당하며 온 몸을 떠는 이들이 있는
이 세상에 오십시오.
그리고
그리고
스스로의 행복에 취해
주변의 슬픔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들이
공존하는 이 땅에 오십시오.
수천 년을 기다려
겨우 인류의 역사 안에 모습을 드러내신
불쌍하고 가련하신 하느님!
기다림밖에 다른 방도가 없고
약속이 무엇인지 기억도 못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잃어버려
침묵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는,
비천하고 황폐한 이들이 많은
이 땅에
함께 머무시러 오십시오.
오늘
시커먼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
유유히 놀던 바닷고기 질식해 떠오르고
지금
바람조차 흐르지 못하는 혹독한 공기
하늘을 가르던 갈매기 숨 막혀 쓰러진
이 땅에
당신이 보시고 아름답다고 찬탄한
이 둥근 땅에
또다시 십자가를 지러 오십시오. (200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