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일 (2022년 11월 6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2.11.08 23:15:16

2022년 연중 32주일

 

 

 

무더운 여름철의 늘 푸른 잎사귀들이 이젠 가을 단풍으로 변했습니다. 사계절의 변화는 인생의 변화를 매일처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위령성월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까이 대하도록 일깨워 주고, 우리의 마지막 고향이 하늘 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임을 일깨워 주는 그런 희망의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 봉독 한 성서의 주제는 인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부활하리라’는 확신은 어머니와 일곱 아들에게 목숨을 바치며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됩니다. 그들은 손목을 잘리고, 혀를 끊기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고귀하고 높은 삶을 사는 것이며, 죽음은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열어주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육신의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 가이파 사람들이 던지는 호기심 섞인 부질없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논쟁을 펼치시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바꾸시면서, 사후의 생명과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는 따위의 질문은 예수님에게는 진정한 질문이 못되며, 소인배들의 호기심이나 자극하는 일로 여기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희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나,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와 같은 질문이야 말로 진정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 분이시기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하십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과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은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생명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우리의 희망에 도전하며 우리가 살아계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신뢰를 갖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우리의 희망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우리는 오늘도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오늘 복음과 연관해서 헨리 나윈 신부님의 저서 “춤추시는 하느님”에서 인생을 통찰하는 다섯 가지 지혜 가운데 3장 “운명론에서 희망으로”에서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덧없는 인생을 찰나적인 것이 아니라 영존하는 것이고,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는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비록 깨지기 쉬운 연약한 삶이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품을 놀라운 이유가 있다.

 

이 숨은 실체를 어떤 이들은 은혜라 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생명이라고 하며, 어떤이들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라 한다. ……예수님은 믿는 이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엄청난 혁명이다. 이 덧없고 찰나적인 세상에 그분이 영생의 씨앗을 뿌리러 오신 것이다. 여러 면에서 영적인 삶이란 바로 그런 뜻이다. 일시적인 것 속에서 영원한 것을 찰나적인 것 속에서 영존하는 것을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가꾸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삶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