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일 (2022년 10월 2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2.10.03 16:59:09

2022년 연중 27주일(다해) 이영수 신부님

 

10월 첫 주일을 맞는 오늘 복음서에서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청원을 대하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그것은 대단히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아주 작은 씨앗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나무를 옮겨 놓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믿고 받아들여,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어떤 처지에서도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은 우리 모두가 형제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0071,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프랑스 엠마우스 공동체 운동의 창시자인 삐에르 신부님이 마지막 말년에 죽음을 앞두고, 우리에게 전해주신 당신의 3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온갖 잔혹한 행위들이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그럼에도 내 신앙의 핵심은 세 가지 확신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내 신앙의 첫 번째 토대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확신입니다. 두 번째 토대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토대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 자유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입니다. 인생이 내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었지요. 나는 이 말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런 확신이 내 인생과 행동의 열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방송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묘비에 새기고 싶은 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 사제는 답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기쁨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하느님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과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생명들을 섬기고 봉사하며 나누는 일,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가 다릅니다. 사랑의 그릇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깊이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안에는 아주 많은 의미와 가치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앙의 눈으로 꿰뚫어 보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무엇을 더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덜 사랑해도 되는지, 그저 있고 없음이나, 돈 되고 안 되고의 그 천박한 기준을 넘어 마음으로 가난할 줄 알고, 긍지있는 불편과 희생을 선택할 줄도 알며, 고통 중에 기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마지막 도구이고 하느님의 지혜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진정한 은혜는 지금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그것을 말해줍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을 더해 달라는 요구에 오늘 예수님은 엉뚱하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우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성서에서 자주 듣는 말씀이 있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의 작은 믿음 앞에서도 얼마다 감탄하셨는가요. “, 너희 믿음이 장하다. 너희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믿는 대로 되어라.” 그리고 왜 그토록 믿음이 작으냐?” 하시며 슬퍼하시기도 하십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해주신다는 이 신앙은 내 존재를 알게 해주고, 왜 사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어떤 것이 인간의 도리인지를 실천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이 성모 마리아 안에서 완전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실제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분께 순종하는 믿음을 드러내면서, 완전한 순종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여겼습니다. 종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종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는 겸손한 고백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에게 빌고 또 바쳐서 고통과 불행을 피하고 좋은 혜택만 받아서 누리자는 이기적인 일이 아닙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을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 부른 것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실천들이 우리 인간을 더 자유롭게 또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 인간다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이라는 또 다른 눈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깨달았다면, 그것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할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도 바로 너희는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0월은 매괴성월이요, 전교의 달입니다. 우리가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데 마음을 더 써 보는 달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