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2022년 8월 7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2.08.09 23:05:11

오늘 제1 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이집트에서 살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남의 나라에 속국이 되어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내용은 언제고 이루어진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처럼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 백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믿었으며 지금 당장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백 년 후, 아니면 천년 후에라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성취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그런 애절함 때문에 숭고한 것입니다.

 

2 독서에서 강조하는 것도 그와 같은 믿음입니다. 사람은 진정 무엇을 바라보고 또 희망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께 우리의 미래를 걸고 있을 때 우리는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갖게 됩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래를 약속하신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약속이 성취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충실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준비는,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등불을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며, 그 주인이 가져오실 위대한 선물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 보다 높은 재화를 얻기 위해서 보다 낮은 재화를 나누고 베푸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결혼이나 회갑처럼 미리 날짜와 시간을 받아 놓고 기다리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돌발적인 사고나 죽음처럼 시간과 날짜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첫째의 경우는 정도 이상으로 준비하지만 두 번째의 기다림에는 또 대단히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괜한 욕심을 내다가 자기 명을 헛되게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자기 판단이 옳다고 자신하다가 그만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숱한 교통사고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마지막 시간을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며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언제고 잃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병든 사람, 그리고 억울하게 박해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일 돕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살아가며 그때그때 돕는 것입니다. 항상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들고 불우 이웃을 찾는다면 그는 정말 멋지게 기다리는 길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실한 기다림의 자세를 갖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