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죽음의 어둠을 뚫고 우리 가운데 밝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생명의 빛이 수녀님들 공동체를 밝게 비추어 주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약동하고 살아 숨 쉬는 공동체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은 어둠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으로 다가오시는 사건입니다. 이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삶의 양식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매년 부활을 지내면서 이러한 묵상을 하게 되지요.
우리는 사순시기 동안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통해서 생명을 준비해왔습니다. 단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봄으로써, 해이해지고 나태해진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하느님과 마주 앉아서 나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느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아울러 자선을 통해서, 먹고 남은 것을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고 누구에게 무관심한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과 나, 그리고 이웃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바로 부활이며 새로운 생명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 성야의 전례를 빛의 예식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부활초에 불을 켜면서,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올해의 숫자를 새기며, 주님께서 시간과 세기의 주인임을 되새깁니다.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의 주인이 되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시간의 굴레 안에서 역사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시고, 죽음까지 경험하셨지요. 하지만, 이 죽음을 이겨내심으로써 당신이 이 시간의 주인이요,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명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아울러 이 빛의 예식을 통해 우리는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지요. 우리 인류의 역사는 죄와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구약의 이야기들은 부족한 인간이 죄의 노예로 있을 때,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의 역사요, 우리 인간들의 해방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끊임없는 해방의 시도에고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는 아직까지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어둠과 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벌써 8년 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지요. 8년 전 그날 저는 로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서 교황청에서 전례와 홍보 담당자만을 따로 불러 사전 준비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서울교구 홍보담당이셨던 허영엽 신부님과 전례 담당자였던 정의철 신부님과 함께 로마에 갔었고, 한인 신학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한국에서 큰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제 머리에 든 생각은 한국에서 큰 사고가 났구나, 그러나 한국은 많이 발전된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 안의 승객들은 무사히 구출될 것이고, 아까운 배만 침몰하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잊어버린 상태에서 교황님의 방한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려온 소식은 배 안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았고, 대한민국은 난리가 난 상태에서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지요. 너무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온 국민이 망연자실하였고, 그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그날 참사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4월만 되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제적으로 푸틴 한 사람의 정치적 야욕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지 못하고, 러시아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계속 포격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갈수록 자기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자기만이 옳고 상대방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보복의 역사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안에서 과연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숨 쉬고 있는지 좌절감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으로 눈을 돌리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는데 거기에 가서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고,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그리고 주님의 천사들이 나타나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이 찾는 곳에 계시지 않고, 이미 그곳을 떠나셨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찾는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절망 가운데 계시지 않고 벌써 새로운 희망을 향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하느님의 나라는 이러한 ‘이미’의 긴장 사이에서 하루하루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원점은 원래의 그 자리가 아니라 한 계단 더 올라서 있는,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한 계단 더 가까이 다가간 모습이 바로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에 있는 복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가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아름다운 봄의 계절에 만물이 겨울의 차가움을 뚫고 새로운 생명으로 약동하듯이 앞으로 50일간 전개될 부활 시기의 축제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발견을 위한 은총의 시기로 이끌어주시라고 모두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