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일 (2022년 4월 3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2.04.04 17:52:39

사순 5주일  - 2022년 4월 3일 강론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봄의 향내를 마음껏 뽐내며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만물이 그 찬란함을 드러내는 이때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마음 깊이 동참하며, 찬란한 부활의 기쁨을 향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 얼마나 탈선이 많았습니까! 우리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왔건만, 그 얼마나 무례가 많았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과거를 잊으시고 언제나 새 일을 시작하려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그 여인,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분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결백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오늘도 죄인은 죄인을 용서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바로 선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과거를 들추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연민은 고통을 나누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그 연민을 여자와 나누십니다. 그 여자의 고통 속에 들어가십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죄인들의 친구, 용서와 자비의 아버지를 매일같이 부르짖었던 예수님의 자리는 바로 여기였습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사랑은 자비입니다. 용서와 자비,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또한 정의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랑은 비뚤어진 사랑, 엇나가는 사랑입니다.

 

그녀는 용서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골짜기를 막 지나왔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회개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묶어두지 않고 뉘우침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우리를 감싸 안아주실 때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 짧은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죽이려 하지만 예수님은 삶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기도와 자비와 사랑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여기서 끝이 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분명히 간음죄를 저질렀고 그녀는 그 죗값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죄는 어디로 사라 졌습니까? 예수께서 그녀를 단죄하지 않으신 대신, 그녀의 죗값을 예수께서 몸소 그녀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은 고문을 당하다 결국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 위에서 죽음을 맞으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한 예수님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유난히 더 바라보게 되는 사순의 절정에, 은퇴하신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 보십시다.

 

“십자가는 참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 우리가 고백하고 믿는 하느님은 저 하늘 넘어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과 같이 되신 하느님이며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고통을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 까지도 끌어안으시는 희망과 구원의 하느님으로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이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으로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요한복음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무서운 분, 율법과 계명으로 사람들의 숨통을 쥐어 틀어 버리시는 분이었으나 예수의 하느님, 예수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은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살리시는 분이심을 요한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 점을 크세 강조하십니다. “과거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현대의 사람들도 자비의 하느님을 용납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끝없는 미움과 보복의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개탄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 특히 악한 이들이 용서받는 꼴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죄인이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에로 출발할 힘과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이 복음의 의미인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로 용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자비는 자비를 낳고,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남의 가슴 시퍼렇게 멍들게 하지만, 하느님은 살기 위해 자신은 나약해지시고 작아지시고 마지막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알의 씨앗이 죽어 자라나 숲을 이룬다던 말씀대로 그분은 생명이 되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절 마지막, 우리는 자비의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자애롭고, 자비로운 얼굴, 용서하시는 얼굴을 보여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하여 그릇된 관념을, 분노하고 심판하는 율법의 하느님이 아닌 사랑의 하느님,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알려주시는 관용의 하느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구원하고 지유하고 넘치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보여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서를 체험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어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해지고 세상이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새 일을 시작하려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다시 시작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