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2022년 2월 6일) - 이영수 신부님

홈지기 2022.02.08 00:09:29

연중 제5주일(다해) 2022. 2. 6 이영수 신부님 강론

 

종교의 기원은 샤머니즘이라고 들먹이지 않더라도 종교 바탕의 본질은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한계 앞에 방치되어있는 두려움. 사실 인간은 대단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에게 광대한 우주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 앞에 한없는 경이로움이야말로 종교적인 경외심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나보다 더 뛰어난 존재에게 의탁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오히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반면 아주 어처구니없게도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에 삽니다.

뭐 좀 가지고 있다고, 뭐 좀 배웠다고, 하느님을 거들먹거리며 내 인생 내 잘난 맛에 산다고 설쳐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말로 겸손해야 합니다. 정말로 작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참사람의 모습이고, 사람이 사는 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불러주신 분이 있기에 불리운 생명들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불행합니다. 제아무리 잘 먹어도 왜 났는지도 모르고 살면 그것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바탕입니다. 그 불러주신 분이 계시기에 지금 제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불러주신 분의 명을 이루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불리움 받은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 부르심이고, 그 부르심 앞에 섰을 때,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이야기합니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탄식합니다. 절대지고이신 분을 뵙자 그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발견한 것입니다. “이 더러운 몸으로 주님을 뵙다니, 감히 내가 주님의 이름을, 이 죄 많은 입술에 그분 이름을 올리다니.” 그는 주저앉고 맙니다.

가장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라 불리는 바오로도 하느님 앞에 섰을 때의 자신의 부당함을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라고, 내가 한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이 부당한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하신 일이라고 철저히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복음은 더욱 확실합니다.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마저도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서, “저에게서 떠나가 달라고 청합니다. “저는 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위대한 고백입니다. 사람은 위대함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거룩함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시몬을 당신 제자로 삼으시기 전에 성공과 실패가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렸다는 점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성취를 위해 세상을 복음화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복음은, 배와 제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교회에 대한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는 전통적으로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밤새 노력해도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쳤더니 엄청난 고기를 잡았다는 사실은, 우리 교회의 선교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선교의 현장에서는 인간적인 노력이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선교의 결과는 오롯이 초월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에,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께 의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비록 우리의 인간적인 눈에는 실패로 보이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위대함과 힘을 믿고 하느님께 충실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라 하십니다. 우리가 부름받았다는 깨달음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이웃의 필요를 헤아려 사랑의 삶을 살라는 주님의 소명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가문비 나무의 노래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여류 바이올린 장인인 질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온 삶을 바칠 때, 진정 우리의 삶은 자신의 삶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름받은 초월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성은 우리의 의식이 소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소명은 언제나 이웃의 필요를 헤아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늘 소명이 살아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그와 함께 믿음도 마비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