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일 설날 미사 강론
오늘은 설날, 음력 새 해의 첫날입니다. 날 수 샐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신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오래전부터 날짜의 기준을 정해놓고 한 해를 돌아보며, 하느님과 조상들을 기억하면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새해에도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풍요한 결실을 맺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단지 우연한 연속이 아닙니다. 물론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서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획된 목표를 위해 무르익은 순간을 뜻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달파 보이고 힘겨운 순간이 닥쳐와도 “우리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난 시간 속에서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믿는 사람들이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새로운 이라는 단어는 네오스 또는 또 하나의 단어는 카이노스라는 단어입니다. 성서에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이라는 이 새로운 단어는 카이노스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새로운 이라는 말보다는, 완전히 다른, 어느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어차피‘새로운 시간’이란 달력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다짐과 결심 속에 걸려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은 시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결심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결심 속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같은 날이면 시편 저저와 함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오늘 설은 자기를 찾는 시간입니다. 정초에 차례를 올리는 일부터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나 이렇게 사는 줄 알고 경거망동하고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살지만 차례상을 준비하고 조상님께 예를 갖출 때 다시 생각나게 됩니다. 내가 잘나 나온 목숨이 아니라 이분들 덕택에 시작된 인생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의 복음은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라고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띤 사람은 일하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준비하고 있어라.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어라.”
인생을 신중하게 처세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하느님이 안 계시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 한 해가 하느님을 향해 깨어 있는 나날이 된다면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삶은 시간 속에 사는 삶이 아니고 영원에 뿌리박고 사는 삶이기에 우리의 삶은 인생무상이란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영원을 향한 하루하루가 아니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입니까!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길이 고생길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인 구정 명절을 고향에서 지내고 싶어 하고, 부모와 친지들을 만나고, 성묘를 하며 자신의 삶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것처럼, 오늘 복은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고향을 찾는 명절의 모습을 닮기를 요구합니다. 영원한 고향인 천국에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올 한 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수도 가족은 물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에 대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며,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