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대림4주일) - 김종선 즈카리야(가르멜 수도회) 신부님

홈지기 2019.12.24 19:28:36

마 전 어느 수녀님의 강의때 들은 것입니다. 대림은 예수님의 탄생, 재림, 새하늘과 새땅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들에도 기다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의

버퍼링, 물 끓이는 것, 버스와 기차도 기다립니다. 이 시기에는 소임 이동도 기다리고 또 한편으로는

냉담 중이거나 불화, 아픔 중에 있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기다림은

그것이 어떠한 기다림이든 인내를 내포하는데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바로 내 삶이라

할지라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무엇보다 기다리면서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기다림의 존재, 혹은 받아들임의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서 살고 그 사랑을 나누는 존재가 바로

수도자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 전, 4명의 젊은이들이 입회했습니다. 제가 담당을 맡고 있는데 기존 종신자 6명에 청원자

1명으로  공동체에 갑자기 낯선 4명의 젊은이들이 오니 공동체 분위기가 다르고, 무엇보다

저 자신부터 바빠지고 여러 생각과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제는 이런

노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우스갯소리지만 참 신비인 것 같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새로운 가족들을 찾고 받아들이고, 다시 또 전과 같이 서로 웃고, 울고,

좋기도 하면서 고민하는 지지고, 볶고 하는 삶이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구약의 율법, 인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틀에만 갖혀있다면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실 뿐이고 우리와 우리의 형제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희망이 아닌 포기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복음에서처럼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시선은 같은 사건, 사람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포기와 무관심, 절망의 대상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는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희망의 씨앗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새로운 입회자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을 최대한 받아들이고자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 전하는 수도자로서의 소명을 지억하며 오늘도 

기도하면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