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일(연중 제31주일)-이영수 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9.11.03 21:23:56

11월  첫 주일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의 늘 푸른 잎사귀들이 이젠 가을 단풍으로 변했습니다. 사계절의 변화는 인생의

변화를  매일처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위령성월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까이

대면하도록 일깨워 주고,  우리의 마지막 고향이 하늘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임을 알려주는 희망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지혜서의 말씀은 자캐오처럼 죄인 취급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심정과 태도를 잘 설명해줍니다. 예수님은 차별과 멸시와 냉대를 받으며 죄인 취급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려 오셨음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회개하기를 인내로이 기다리는

분이시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복음은 죄인 자케오가 바로 예수님과의 극적인 만남으로, 놀랍게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도 십자가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케오의

이야기를 단일 이야기로 읽기보다 루카 복음사가의 안목으로 그분의 의도를 조금 헤아려 봄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951절부터 1927절 까지 계속되는 예루살렘 입성까지 여정을 할애하여

마지막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할 준비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루살렘 순례가 절정해 달해가고 있는 1831절에서 당신이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순난

예고의 말씀을 3번째로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눈이 멀기 때문에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1835절에서 소경 치유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눈을 떠야한다고 일러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극적인 장면이 오늘 191절의

자캐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자캐오의 회심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시려 가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기 위해서,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일러주십니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느님은 지혜로운 이나 힘 있는 이나 능력있는 이가 아니라

언제나 가장 작은이, 가난한 이, 약한이, 무시당하는 이를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선택과 다릅니다.

 

국경도시인 예리코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인 자캐오는 세관장이어서 많은 돈을 가진 부자지만

로마인들의 세금을 거둬들여 로마에 상납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동족 유다인들에게는 죄인 취급

받으며 소외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자캐오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마음이 늘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죄인 자캐오는 늘 마음한 구석에는 무엇인가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의 소문을 들었고 바야흐로 그분이 자기 동네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마도 자캐오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찍이 죄인취급을 받던 사람들, 자기와

같은 세리들, 그리고 창녀와 같은 죄인들을 가까이 한다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자캐오가 키가 작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외톨이의 모습,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캐오의 심리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자신의 그러한 결점을 극복하면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한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 가까이 오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당신의 삶으로 초대하시면서 그를 부르십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으로 가서 자캐오와 함께 지내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초대에 자캐오는 기쁜 마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입니다.

 

당시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경건한 사람들의 눈에는 큰 스캔들이 된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합니다. 어떻게 죄인의 집에 머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위해서 왔으며, 그 일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오직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을 읽으면서 사람이 이렇게 변화되어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변화가 어디에서 유래되는가를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관심밖에 없다는 것을 이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 자캐오의 전 생애에 걸쳐서 이날의 이 만남은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구나, 누군가 나와 함께 하려고 하는구나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구나.이것이 자캐오의 전 삶을 회심시킨 것입니다. 이에 자캐오가 감격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렵니다. 혹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에게서 더 큰 선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받았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루카 복음사가가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참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힘주어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구원은 선인에게보다도 죄인에게 문이 더 쉽게 열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뉘우칠 수 있고 뉘우치면

더 큰 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참된 구원은 자기 죄를 아는 데 있고 그 죄를 뉘우쳐서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회개의 표시를

하도록 합시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