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강론
알로이시오
†.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 말씀은 그 주제가 너무도 명확하고 분명해서 굳이 강론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교의 핵심 영성이 오늘 복음 안에 모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 오늘 복음에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인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은 수도생활을 하는 우리 각자에게는
그 다가오는 무게가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와 또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나의 삶에 비추어보면 스스로를 작아지게 하는 영원한 숙제처럼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유명하고도 무거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롭게 제 마음에 들어온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 곧 천국이 그 율법학자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사랑의 이중계명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의
결과 혹은 목표가 바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워진다는 아주 단순하고 변함없는 진리가 오늘 복음에
숨어있는 것이지요.
수녀님들께서는 평소에 이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지내시는지요? 수도생활을
하시면서 천국의 삶을 얼마나 기대하면서 지내시는지요? 혹시 어느 순간부터 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아예 잊어버리고 지내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가톨릭교회교리서를 보면 교회는 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죽은 후에 온전히 정화된 영혼들은……그들의 육체 안에서 부활하기 전에, 그리고 최후의 심판 전에,
그리고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하늘 나라, 하늘 낙원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모임에 받아들여졌으며, 받아들여지고 있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천국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며,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이고, 가장 행복한 결정적 상태이다.
교리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내세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금여기에서부터 천국을 앞당겨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삶의 완성은
죽음 이후 온전히 정화가 된 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느님 나라를 각자의 삶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전하면 좋을까요?
제가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 대학생 때 그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달 조금 넘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고생을 했었는데요, 여행 중간에는 ‘집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까운 돈들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꾸역
꾸역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얼굴도 새카맣게 타고, 살이 쪽 빠져서
친구들이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권투선수 같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 제가 참 힘들었지만 끝까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힘 중에 하나는 바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버티면 결국 집에 돌아갈 날이 온다. 집에 가면 이
고생도 끝난다.’라는 생각이 저를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도생활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의 삶도 배낭여행과
비슷하겠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돌아갈 집이 있기에, 영원한 천상 고향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겠구나’.
제가 말씀드리고자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는, 천국의 존재는 우리가 마주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일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이중계명의 온전한 의미는 바로 하느님
나라와 연결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전해 진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 역시, 하느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더 씨튼 성녀의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십시오.”라는 이 한마디로
성녀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듯이, 성녀께서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여기의 삶에
충실하셨지만, 동시에 그 놀라운 힘의 원천은 하늘에 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본향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우리의 의무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투신하면서 예수님께서 나에게도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라고 속삭이고 계심을 알아들으며,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
나라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또다시 한 달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혹시 그동안 하느님 나라를 잊고
지내셨다면 나의 진짜 집이 어디인지를, 진짜 고향이 어떤 곳인지를 떠올리시면서 힘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마더 씨튼 성녀의 말씀 한 자락을 읽으며 강론을 마칩니다.
저는 아프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고통을 받지만 낙담하지 않습니다.
혼란되지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시련을 받지만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내쫓기지만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시련은 잠시 뿐이지만 앞으로 다가 올 삶의 영광은
영원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