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 설날 미사 강론 - 이영수 신부

홈지기 2018.02.18 2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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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미사 강론


오늘은 설날, 음력 새 해의 첫 날입니다. 날 수 샐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신 하느님 덕분에 인간들은

대단히 오래 전부터 날짜의 기준을 정해놓고 한 해를 돌아보며, 하느님과 조상들을 기억하면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새해에도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풍요한 결실을 맺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움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섣달 그뭄 밤, 한 해의 묵은 것을 마치 그뭄 밤 쥐불놀이처럼

말끔히 태워버리고, 새 해가 밝으면 우리는 새 것, 새 사람이 되려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설빔을

입습니다. 한 해의 옷, 세장을 입고,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배, 한 해의 새 절을 올립니다.

새로 빚은 세찬과 새 술인 세주를 음복합니다. 새 시간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조상님들이 이처럼

세시를 정해놓으시고, 풍속을 가꾸어 오신 데에는 그만큼 속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한 해를 살면서 당하게 되는 수만 가지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또 내가 그르쳐서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들도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그런 고통들의 대부분은

실상,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인지를 망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이 세시를 정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출발하는 자리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명절은 자기를 찾는 시간입니다. 정초에 차례를 올리는 일부터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이렇게 사는 줄 알고 경거망동하고 다들 제 잘난 맛에 살지만 차례상을 준비하고 조상님께

예를 갖출 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잘나 나온 목숨이 아니라 이분들 덕택에 시작된 인생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러고 난 다음, 어른들께 문안을 드립니다. 자기 자리를 묻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받습니다. 이 역시 내가 이 한 해 돌보고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귀한 자리입니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의 복음은 그 답을 주고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라고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띤 사람은 일하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위주로 살지 않습니다. 그런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준비하고 있어라.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어라." 인생을 신중하게 처세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하느님이

안계시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요,

그러기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잊지 말고,

언제나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신중히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 한 해가 하느님을 향해 깨어 있는 나날이 된다면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삶은 시간 속에 사는 삶이 아니고 영원에 뿌리박고 사는 삶이기에 우리의

삶은 인생무상이란 한계성과 상대성을 극복할 수 있는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영원을 향한

하루하루가 아니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입니까!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길이 고생길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인

구정 명절을 고향에서 지내고 싶어하고, 부모와 친지들을 만나고, 성묘를 하며 자신의 삶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것처럼,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고향을 찾는 명절의 모습을 닮기를

요구합니다. 영원한 고향인 천국에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고 그분을 중심으로 살라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배려와 사랑이 우리를 감싸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려와 사랑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보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제단 앞에 차례상을 모신 것은 바로 십자가라는 철저한 종노릇 앞에 우리가

머리를 숙이듯, 우리 조상들,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내가 머리를 조아려 나도 종이

되겠노라고, 그야말로 지금 당장 모든 섬김을 실천할 준비를 끝낸, 허리에 띠를 불끈 동여맨

종노릇을 하겠노라고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금년 한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수도가족은 물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에 대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하며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