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일) 이영수 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7.11.06 01:18:22

연중31 주일(가해)

 

사람이 사람에게 등급을 매길 수 없지만 세상은 사람을 공부로, 돈으로, 능력으로 이미 금을

그어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할 수 없지만 세상은 장애라는 이유로, 가난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이미 금을 그어놨습니다. 오만가지 사상과 정치적 이유로 이미 충분한 차별을 통해

기득권을 옹립하는 무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해왔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 예수님에 의해 걸려 넘어지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오늘 율법학자들에게 퍼붓는 예수님의 질책은 엄청납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율법학자들이 대단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었고 율법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랍비라 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신주 모시듯이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백성들에게 율법대로 살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민중은 너무나 많고 복잡한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 서기만 하면 죄인처럼

늘 고개를 숙이고 작아져야 했고, 더구나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민중들로부터 아버지, 아빠로

불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근사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마와 왼쪽 팔 위에 매달고 다니는 ‘성구 넣는 갑과 검은 옷

아래 끝단 네 곳에 달고 다니는 ‘기다란 술’은 자신들이 대단한 인물임을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구역질날 정도로 난척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갈고리로 후비는 듯한 모욕적인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말아라."

참으로 뼈아픈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적나라할 수 없습니다. "그 인간들은 어디에서나 윗자리를 탐하고, 길거리에선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존경받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남들에게서 스승, 아버지라는 칭호를 듣기를 원하나, 진정

아버지는 하느님뿐이다. 스승은 한 분뿐이니 너희는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사실, 스승, 아버지 , 지도자는 모두 특정한 봉사를 담당한 사람을 지칭하는 호칭입니다.

스승은 학생을 위해,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지도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의 존칭으로만 시용하면서 봉사는 사라지고, 우월감만,

어떤 지배권과 특권만을 의미하는 권력 구조로 남아버렸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우리는 참 스승이요, 참 아버지시며 , 참 지도자이신 하느님 앞에서면 모두가 똑같은 형제들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렇게 공동체성, 하나 됨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닮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점에서 닮았고,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뜻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번번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조차 우리는 닮았는지

모릅니다.

 

으뜸가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하십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만이, 참으로 신앙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만이 발설할 수 있는 완덕의 방법입니다.

 

모든 죄는 높아지기 위해서 생겨납니다. 죽기 위해 걷기 시작한 십자가의 길에는 처음부터 낮아지는

길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이며, 참된 겸손은 하느님을 바로

아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남을 차별하지 않을 뿐아니라 모든 이를 하나되게 하고 교회와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을 들녘, 벼이삭을 보면서 그리고 단충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산처럼, 저마다 우리도 자신을

낮추고 작은 사람들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