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 최현민 수녀님

홈지기 2017.02.11 01:08:51

-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최 현 민 (종교대화 씨튼연구원 원장)

 

‘행복’은 오늘날 시대적 물음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다는 의미겠다. 새해를 여는 이 시점에 ‘행복’을 주제로 무언가 써야 하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건 작년 암울했던 현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우린 2016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재시간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어제나 내일은 우리의 의식세계 안에 있는 시간이지, 실재시간이 아닌 까닭이다. 이렇듯 실재시간이 지금 이 순간뿐이라면, 지금의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하는 것 또한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말은 곧 나의 행복은 너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 다른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한국인들의 행복’을 운운할 때 보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행복지수를 비교한 수치를 들먹이곤 한다. 한국은 OECD 35개 회원국에서 행복지수가  29위에 머문다고 한다(2016년기준). 또한 그 중 자살율은 한국이 1위,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최하위라고 한다. 사실 행복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객관적 기준으로 이를 측정한다는 말인가?


물론 행복에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면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면도 있다. 이는 사회적 요인이 개인적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인의 행복지수의 요인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분석에 주목해보자.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 교수는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된 혈연 지연 학연의 관계주의와 현세기복주의, 배상주의가 한국인이 지닌 지복의식에 영향을 준다고 발표한 바 있다.(문화의 안과 밖, 2014년 12월20일 강좌)


그는 한국인 마음의 습성은 자기식구를 우선시하는 혈연중심의 관계주의와 현세주의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삶의 고난에 대해 대가를 되돌려 받기를 갈망하는 배상주의라는 삼중 나선형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세 심성적 특성은 (아는 이들) 끼리끼리, (살아생전에) 빨리빨리, (챙길 수 있는 한) 많이 많이라는 의태어 속에 잘 담겨있다고 한다. 빨리빨리, 많이 많이라는 심성은 자신을 숙고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체, 그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학벌 부 명예가 행복의 비교기준이 되어 많이 갖고 출세한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그들을 쫓아가기 위해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교인인 우리도 한국인이 지닌 기복적 행복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시하는 행복관보다 세속적 행복관을 그대로 자신의 행복의 척도로 삼고 살아간다는 의미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올 한 해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이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에 우린 결코 혼자서만 행복해질 수 없다. 끼리끼리 행복해지는 것도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진정 행복해지려면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 작년 우리 앞에 드러난 한국사회의 민낯은 자신의 실속만을 챙기고 끼리끼리 행복해지려 했던 이기적인 마음들이었다. 그러나 끼리끼리 잘 살아보겠다고 꼼수를 쓰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한해였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행복의 메신저가 되어보면 어떨까 싶다.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내 주변에 긍정적인 시선과 말을 건네는 작은 노력을 시도해 보자. 우선 가까운 가족부터 말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는 “많이 피곤하시죠?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아이들에게는 “사랑한다 고맙다 잘했구나! 미안하다” 등의 말을 먼저 건넴으로써 긍정적인 씨앗을 내 주변에 뿌려보는 것이다.


인간 뇌세포 속에는 경험과 역사에 의해 기억된 것이 저장되어 있다. 이 저장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런 점에서 행복도 다른 기술처럼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놀랍게도 긍정적인 말을 하면 내 안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쌓이게 되면서, 자연히 마음에 평화와 행복감이 차오른다. 너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 마디 덕분에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용서하세요”라는 긍정적인 말들을 자주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행복의 씨앗에 물을 주는 일이기에 그렇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우리 마음에는 두 마리 여우가 싸우고 있단다. 하나는 선-기쁨 평화 사랑 자비이고, 하나는 악-화 질투 욕심 건방짐 열등감 우월감 자만 거짓이란다. 그러자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 어느 여우가 이겨요?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녀석이 이기지.”

 

나는 과연 어떤 여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내가 먹이를 준 녀석이 결국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모든 게 습관들이기 나름 아닌가? 내가 하루 하루 주는 먹이에 따라 나 자신의 습관도 그 방향으로 강화된다. 


우리의 마음은 일종의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도 있고, 미움, 절망,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도 있다. 내가 상대에게 거칠게 말하면 내 안에 있는 분노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거기에 자꾸 물을 주면 분노의 감정은 점점 더 커진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고, 미움이나 시기 질투 또한 눈덩이처럼 증폭되기 마련이다. 틱낫한은 화를 푸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말고, 자신이 지금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알려라. 그리고 도움을 청하라. 나는 지금 고통스럽고 그래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라. 


틱낫한은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아이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우는 아이를 달래듯 화를 돌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화를 돌본다는 것은 호흡이나 보행을 통해 화라는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의 에너지는 크기 때문에 당장 화를 표출해 버리면 크게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화가 났을 때 우리는 흔히 “내 옆에 오지 마, 당신은 필요없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말해버리면 결국 상대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우리는 자신이 타인에게 행하는 게 곧 자신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불화를 멈출 수 없다. 불화의 씨앗은 도처에 있고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잠재되어 있다. 우리 안에 타인에 대한 미움이나 시기, 분노를 지니면 지닐수록 그 적대감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어두워지고 만다. 행복해지려면 부정적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되돌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인간의 마음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가는 원숭이처럼 쉬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건너다니며 열심히 무언가를 찾지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한다. 이제 우리는 이리저리 헤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조용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실 앞에 고요히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온갖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마음에 고요히 흐르는 평온함을 맛보곤 하지 않았던가? 


그 평정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로 행복의 원천인 압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갈망하는 행복은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그분께 머무는 것에서 비롯됨을 말해준다. 그분께 마음을 의탁하고 하루 하루 살아갈 때, 우린 세상의 변화무쌍한 역사 속에서도 비교적 덜 흔들리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 한 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함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티벳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잘 말해주고 있다. 

 

“마음의 평화를 통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평화는 무엇보다 먼저 한 개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사랑과 이해, 남을 위하는 마음이 평화의 근본이라고 믿는다”(틱낫한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11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