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6 부활성야 - 이영수 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6.03.27 19:10:06

부활성야 밤미사 강론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는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오 참으로 복된 밤, 이 밤은 거룩한 밤,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이여,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 게시고 다스리시나이다. 알렐루야.”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성 주간을 시작했습니다. 성목요일에는 마지막 만찬을 들면서 발을 씻어주고, 사랑의 유언을 들었고, 어제 성 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외침을 들으며, 그분이 버림받으심을 보았고, 유다에게 입을 맞추며, 드디어 체포되어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하고, 묵묵히 헤로데왕을 쳐다보며,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도 여자들을 위로하고, 십자가의 길 위에서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고맙다고 하며, 십자가위에서 모든 이를 용서하며,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에 기도하며, 십자가 오른편 강도에게 천국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그분은 머리를 떨구셨고, 그분의 심장은 창에 찔리어 물과 피를 쏫고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진정 우리의 희망이 아니었던가요? 그분과 함께 모든 선과 정의와 사랑의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 듯하였습니다.

 

갈바리 산상에서 비참한 삶을 마친 예수의 생애는 완전히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의 가능성도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를 죽인 적들도 이렇게 해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을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말고. 너도 살고 나도 살려보라던 야유와 조소가 지금도 우리의 귓가에 들려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갈바리아가 결코 종말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판결은 하느님의 판결입니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자 암흑에 살던 우리가 보았던 중의 가장 찬란한 아침이 온 것입니다. 첫 번째 부활의 새벽이 찾아 온 것 입니다. 하느님은 그분을 해방시키시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해방시켰습니다. 낡은 세상이 끝이 나고, 새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생활 중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증거와 표정을 요구했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언젠가 놀라운 증거와 표정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격려와 희망의 표징, 불멸하는 영원한 생명의 표지, 악을 이기는 선의 표지, 완전한 실패에서 솟아나오는 성공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의 삶이 옳았습니다.

 

어두움은 가고 새벽이 오기마련입니다. 고통에 지친 사람들에게 밤은 끝없이 긴 것처럼 여겨지고 새벽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은 밝아오는 찬란한 새벽을 여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다스리십니다. 나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부활은 십자가를 지고, 오르막 길 위해서 맛보는 황홀함입니다. 죽음을 통해 찾아오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안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얻은 기쁨입니다.

 

결국 인간은 나 때문에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애초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너를 위해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철저하게 너를 위해 살 때만 참되게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 십자가를 통해서 얻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죽는다’라는 의미는 나 때문에 사는 삶을 중단하는 것, 그리고 나의 이익이 아니라 철저하게 너를 위해 사는 삶을 시작할 때, 부활의 삶이 시작됩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부활은 철저한 이기심을 깨트리고 심지어, 그를 위해 이제는 내가 죽을 각오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그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는 생명의 방식입니다.

 

이 부활의 방식을 이해할 줄 알아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성서의 말씀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참으로 살 맛 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부활은 죽은 시체들이 관 뚜껑 열고 걸어 나오는 소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지독하게 안 죽으려 하는 나를 죽이고, 이제부터는 오직 너를 위해 살기로 작정할 때, 비로소 체험하게 되는 기쁨입니다.

 

이제 조용히 부활이 주는 이 큰 기쁨과 희망의 축제를 하루 행사로 끝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참고 견딘 나무마다 더욱 현란한 빛깔의 꽃을 피우는 이 아름다운 봄날처럼, 혹독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고서야 찾아온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오래 동안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