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4 사순제5주간 월요일 - 이영수 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6.03.14 18:15:12

사순5주간 월요일

 

부모 품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그 부모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있을 때 모르고 떠나고 나서 깨달으니 이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스승이 그토록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전하고자 했으나 이를 깨닫지 못하다가 부활사건 이후 스승의 참모습을 갈수록 깨달아가며 요한은 가슴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오늘 복음에, 들어도 도무지 알아들으려하지 않고 보면서도 도무지 깨달으려하지 않은 채 조롱만을 일삼는 유다인들의 반응이 바로 스승과 함께 살면서도 그 참됨을 몰랐던 어리석음에 관한 토로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선 요한복음은 다른 세 공관 복음과 확연히 다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라는 이 세 공관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시다는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집필된 기록물이라면, 요한은 그 단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요한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묵상록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라는 인물을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색깔의 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안경의 색깔로 예수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실재는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며, 바로 이 예수님이 요한의 글을 통해 걸어 다니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에 의한 예수님의 모습은 부활 전에는 결코 체험된 적이 없는 그런 예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통해 묵상한 결과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은 그런 관점에서 십자가의 죽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요한은 이 묵상 결과를 극명한 대비를 통해 드러냅니다. 어둠이라는 세상과 빛이라는 하느님, 죽음이라는 세상과 생명이라는 하느님, 거짓이라는 세상과 진리라는 하느님을 소개합니다.

 

오늘 복음을 가만히 보십시오. 예수님과 사람들의 대화는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못 알아듣습니다.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를 사람들이 못 알아들었던 것은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맨날 예수더러 “당신은 누구요?”하고만 물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대한 질문이 틀렸기 때문에 그 대답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라고 물어서 될 일이 아니고, “예수가 나에게 누구인가?”라고 물어야만 우리는 제대로 예수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그런 존재입니다. 사순 5주간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요한복음서 8장을 계속 봉독하면서, 이것을 묵상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