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참사람 되는 길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탄생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탄생 의미는 탄생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분의 전 생애를 함께 보아야만 밝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은 매우 특별합니다. 그 까닭은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탄생 이전과 이후, 곧 전체 삶의 지평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는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근원, 그리고 그분의 지상에서의 삶과 그 이후까지의 전모를 가늠하고 짐작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1,1 참조)는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오신 분인지, 그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의 탄생 이전에 이미 ‘존재’하신 분, 인간의 시간을 넘어 영원성을 지니고 존재하신 분이셨습니다. 영원하신 그분께서는 생명이셨고,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셨습니다(1,3 참조) 또한 그분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셨습니다.(1,9 참조)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시고,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시는 생명이시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신 그분께서 마침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게’(1,14)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만의 세계를 넘어, 자신만의 체계와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건너오시고, 우리 가운데 사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비로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분의 운명이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요한복음은 암시적이지만 매우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분은 생명이셨고 빛이셨으나,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1,9-11 참조) 그분의 운명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분의 운명의 최종적인 얼굴(부활)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하느님이신 분께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사람이 되는 길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분의 일생은 참사람이 되어가는 길 다름 아니었고, 그분의 십자가는 참사람으로 완성되어가는 길이었으며, 그분의 부활은 참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을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참인간으로 완성되는 십자가의 길에서 비로소 온전한 의미가 밝혀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분의 탄생의 완성인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탄생의 의미를 온전히 밝힐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한없이 무겁고, 장엄하고, 고통스럽다는 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런 십자가는 그 누구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그분의 기쁨, 그분의 행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로부터 나오는 기쁨과 행복 때문에 자신의 운명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곧 십자가는 기쁨과 행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오늘 경축하는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된 성탄을 지내면서, 우리 존재의 근원을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1,12)임을 새롭게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왔고, 그분을 향해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 인간이 되는 길임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성탄을 지내고 경축하는 의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