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대림제2주일 - 이영수 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5.12.07 00:41:06

대림제2주일 (다해) 2015


하느님께서는 성탄이라는 기점을 통하여 우리들이 회개의 삶을 향해 거듭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대림 둘째 주일에는 회개하라는 말씀과 함께 두 번째의 촛불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회개하는 시기입니다. 성탄은 메리크리스마스로 끝나버리는 축제일이 아닙니다. 성탄은 새롭게 살고 거듭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초대이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제단 앞에 보랏빛 촛불을 밝히는 것은 기다림과 희망에 관한 상징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다시 희망, 기다림, 믿음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다시금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매년 우리가 성탄을 기다리며,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들이 하느님 나라, 그 길을 걸어감에 있어 늦추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변하지 말 것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이끄시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별이요 또 우리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안에 환하게 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대림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대림의 더 깊은 의미는 우리가 누구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함께하자. 회개하라, 그리고 간절히 그리고 절박히 호소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달라 하십니다. 나의 사고방식, 관점, 삶의 태도, 삶의 초점을 바꾸어 보라 하십니다.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라 하십니다. 우선권을 바꾸라 하십니다. 세상 것, 육체적인 것, 피상적인 것, 이기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 천상적인 것, 영적인 것, 이타적인 것에로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보라하십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시기는 우리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최상의 준비가 회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야합니다 아기 예수의 구유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겸허를 하느님의 자기 비움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들어오시기 위하여 얼마나 스스로를 낮추셨는가를, 하느님 구원의 방식을 깨닫는 믿음의 눈을 뜰 것을 요청 받습니다.


오늘은 인권 주일입니다. 사람의 귀함을 알아보라는 주일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가장 귀해야 할 사람을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하고, 그거 하려면 우선 나부터도 다시금 제대로 된 하느님의 자녀답게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회복이고 복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골짜기가 무엇이고 산과 언덕들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골들이 있습니까? 내 마음에 터무니없이 솟아 있는 나만 잘난 마음들이 태산처럼 솟아 있지 않습니까? 굽을 대로 굽은 배배꼬인 마음도 내 마음이요, 요새말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거친 마음, 미움과 상처와 분노와 욕심 때문에 거칠어진 마음들을 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 가는 길, 탄탄대로로 만들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일찌감치 맞이할 수 있으리라 약속하십니다. 대림 두 번째 초가 켜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비천한 곳에, 가장 낮추어진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에 대하여, 이 대림시기에, 그 하느님의 방식을 제대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구유는 바로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돌려주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좀 적게 가지고 살아도 되는 삶을, 좀 부족하고 모자라고, 때로는 제법 많은 흠이 있을지라도, 단지 그 이유로 내 스스로의 행복을 박탈당하지 않아도 좋다는 위대한 희망의 선언을 우리는 구유에서 듣게 됩니다.


구유 앞에서, 교회가 선포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소유의 방식이 아니라 비움의 방식으로, 높아짐의 방식이 아니라 낮아짐의 방식으로, 강함의 방식이 아니라 약함의 방식으로, 이김의 방식이 아니라 짐의 방식으로 환골탈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작아져야하고 더 약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유의 방식이고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방식이고 마리아의 방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시는 이 세상은 그다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구유 앞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방식,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식과 계획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6년 새해는 구유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