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왜 예수님께서 이토록 가난한 사람들, 죄인들, 창녀들, 세리들을 부르시고 변호하시고 도우셨을까요? 똑똑하고 잘났다는 사람들에게 무시만 받던 그들을 당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로 챙기신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필 예수님은 논란거리가 될 것이 뻔한 세리를 굳이 당신 제자로 뽑으십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결격사유를 정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격사유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는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이나 그것을 따지는 사람이나 모두가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누구하나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죄인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결격사유를 감당할 작정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모든 결격사유들을 감당해주십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모든 약점과 죄와 한계와 절망과 단절을 참아주실 수 있고 인내하실 수 있으며 견뎌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 이 사랑을 제대로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예수는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죄인 중에 상 죄인으로 불리던 세리를 굳이 당신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의 기쁜 소식입니다. 죄인인 내가 살 수 있는 희망이 선포된 날이기 때문에 복음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나는 죄인과 같지 않은 나는 저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당당해하고 있다면 오늘 복음은 결코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불편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편하지 않습니다. 내 죄를 보게 하고 내 약점과 한계를 자꾸 들쑤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자격도 없는, 죄인 중에도 상 죄인인 저에게도 그런 사랑이 허락되어져 있음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