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3 부활제2주간 월요일 - 이영수신부님

홈지기 2015.04.15 01:35:51

부활 후 2주간 월요일

 

우리 그리스도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종교이고 기쁜 소식 곧 복음의 핵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살면서도 새롭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부활이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희망을 선택하여, 바로 내 생명에 생기를 돋게 하는 일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무덤에서 확인되거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빈 무덤에서가 아니라 바로 제자들의 삶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중요한 골자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체험의 사건입니다. 두려워 도망쳤던 그들이 , 다락방 문을 걸고 숨죽이던 그들이 문을 박차고 나아와 당신들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그분이 다시 우리들 안에 살아 계시다고,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가라고! 당당히 선포할 수 있게 만든 그 체험입니다.

 

나는 죽어도 그분을 모른다던 제자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남은 열 한 제자가 모두 죽기까지 , 죽었던 예수가 살아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증거하게 만든,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부활이라는 어떤 사건이 제자들 각자의 인생 안에 체험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무덤의 동산에서, 누구는 엠마오의 길에서, 누구는 다락방 그분의 못 자국에 손을 넣으며, 누구는 이른 아침 호숫가 어귀에서, 누구는 갈릴래아에서 그분을 처음으로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들은 예수께서 지금 내 앞에, 지금 내 안에, 구체적으로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깨닫게 됩니다. 이 체험을 통하여 그들은 다시금 예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의 생명과 죽음이 분리된 사건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부활의 눈으로 예수의 말씀을 다시 알아듣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니고데모의 이야기도 사실은 부활의 체험이 무엇인지를 요한 복음사가는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낳는 삶, 새로운 삶, 이것이 부활의 생명임을, 그리고 세례로 다시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니고데모는 평소에 예수님이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다른 스승보다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음을 아신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자신의 물음을 꺼내기 전에 먼저 니고데모의 속 마을을 간파하시면서 영적인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꺼내어 말씀하십니다.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일러 주십니다. 즉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리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참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 남,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부활의 삶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에 거듭남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람과 마찬가지로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처럼, 거듭남의 신비도 손으로는 잡을 수 없지만, 그 효력을 분명하게 들어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빛을 냅니다.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를 묻는 그에게 예수님은 지상적 차원에서 천상적 차원을 바라보도록 당부하십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매순간 깨닫는 삶이 바로 거듭난 삶이요 부활의 삶입니다.

 

거듭난 삶은 군림하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이요,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사람, 심지어 원수를 사랑할 때 그것이 부활의 삶임을, 그리고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부활의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이 기쁨, 곧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요, 우리의 그리스도라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아서도 가르치셨으며, 수난과 죽음으로도 가르치셨고, 마지막 부활을 통해 이 모든 가르침에 확증을 해주신 분이라,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었고, 또 살아서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부활이 무엇인지 깨달았음으로, 죽어야 할 때를 더이상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부활은 참으로 겸허한 생명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살아 자신을 죽일 줄 알고, 살아 탐욕을 버릴 줄 알고, 살아 오직 사랑만이 전부로 남게 하는 그 지엄한 생명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기쁜 소식이며, 충만한 희망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희망하는 일입니다.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질서가 새롭게 이 땅에 선포되는 일입니다.

 

세상은 참혹하지만 우리는 희망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우리를 속상하게 하지만, 우리는 그 절망을 지나가고, 그 죽음을 지나가고, 그 고통을 지나갑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죄에서 해방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비록 우리, 지금은 부활하지 못한 애벌레처럼 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 애벌레로 우리의 생명이 마감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함의 생명으로 들어 높여질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사십시다.

 

사랑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죽어도 그 사랑을 선택할 때 비로소 나에게도 부활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짐을 한 해 한 해 신앙의 나이테를 늘여가며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들 안에 부활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하느님이시라면 우리는 살아낼 수 있고 살아갈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삽시다. 신앙과 희망의 기운으로,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 바로 우리가 증언하는 부활의 증거물이 되게 합시다.

 

바벨탑은 무너지고 하느님의 가장 작은 제단이 세워졌으니 , 부활을 믿는 자, 기어이 부활을 누릴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