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동안 기념했던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어둠의 힘을 뚫고 일어나신 주님의 승리를 온세상 만물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실로 우리들의 삶의 자유이고 해방이며,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남입니다.
가슴 벅찬 부활의 감동을 우리는 부활성야의 밤 ‘부활 찬송’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라, 하늘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찬 나팔 소리, 찬미하라, 임금의 승리.”
우리는 이 부활찬송을 들으며, 우리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생명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며, 또한 내 안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던 속박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그야말로 새로운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에 대해서 듣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실 때를 들려줍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가 그야말로 다름 아닌 새로운 생명의 창조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 풀과 과일나무,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이를 다스릴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생명은 인간의 것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다 신비이며 경외입니다. 이 하느님의 창조와 새로운 생명은 바로 첫출발을 의미합니다. 깨끗하고 희망에 가득찬 새로운 출발인 것입니다.
또한 이어서 들은 출애굽기의 말씀도 이스라엘백성을 노예의 생활에서 새로운 인생의 삶으로 초대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든든한 힘이요, 우리의 버팀목입니다. 주님의 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기마와 기병을 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구름기둥으로 그 백성을 이끄십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도 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와 희망이 흐르는 약속된 땅, 즉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고, 새로운 희망이며, 새로운 출발입니다. 이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속박을 끊고 일어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막혀있던 모든 불목과, 결코 풀리거나 화해되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단절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화목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 사이에 여러 굴레로 묶여있던 모든 사슬에서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이 경이로운 부활의 체험, 진정한 해방의 체험에 도달할 때, 다른 이들도 이 주님의 잔치에 초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아침 일찍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을 때,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향료를 준비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덮고 있는 커다란 돌을 누가 굴려줄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어둡고 두려움과 걱정에 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걱정은 온전히 인간적인 걱정이었고,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이들의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그 무덤의 돌을 밀어 헤치고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루가 복음에 보면,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고 천사가 일러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든 삶을 다시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낮은 말구유에 태어나셔서 가난하고 소외된 땅 갈릴래아에서 자라신 예수님께서는 권력자들의 무시를 이겨내시고, 겸손으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해내십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하늘나라의 주인으로 선포하심으로써 진정으로 새로운 삶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밝히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들의 진정한 부활도 바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할 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은총에 우리도 함께 참여하기를 초대하시고, 힘차게 빛의 세계로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덤 앞의 큰 돌을 두려움 없이 거두어내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어둠을 이기고 우리 앞의 큰 돌을 거두어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프란체스코 교종께서 사순시기 담화를 통해 우리 모두 무관심에서 벗어나 이웃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자고 요청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낮은 존재로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낮은 자로 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갈릴래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주님이 계신 갈릴래아에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김희중 대주교님께서는 부활 메시지에서 우리 스스로가 갈릴래아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하여 일 년 전의 세월호 참사와 그 희생자들을 다시 기억하자고 초대하십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삶을 근원적이고도 전반적인 사회의 위기를 재조명하는 기회로, 그리고 이 교훈을 절대 잊지 않기를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갈릴래아 사람으로 인식할 때, 그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가난하고 소외되며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다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고 고통 받는 구조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작년 말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반기문 총장의 송년사’는 그분이 직접 쓰신 것인지 그분의 이름을 빌린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 반기문 총장의 송년사 >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
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2015년은 뜻하는 바 모두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교황성하께서도 한국 신자들이 시복감사미사를 하기 전에 만나셨을 때, 우리 신앙의 뿌리와 열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피와 희생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religious well-being 즉 종교적 안락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신앙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회는 점점 더 발전해가지만 삶의 의미는 점점 줄어드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의 돌을 밀어제끼시고 나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우리 안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