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제2주일(나해) 이영수신부님 강론

홈지기 2014.12.09 05:19:52

대림제2주일(나해)

 

오늘은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탄이라는 기점을 통하여 우리들이 회개의 삶을 향해 거듭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절 둘째 주일에 회개하라는 말씀과 함께 번째의 촛불을 밝힙니다. 성탄은 메리크리스마스로 끝나버리는 축제일이 아니라, 새롭게 살고, 거듭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초가 하나가 밝혀질 , 다만 제단의 어두움만 물러가야 할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어두움도 그만큼 물러가야 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오늘 복음에서의 광야는 이미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만났던 곳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계에 부딪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절망했던 바로 그 순간 그 광야에서 하느님을 제대로 만났던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등장했다는 의미 또한 이런 선포입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자신은 죽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부질없는 모든 것들을 버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 진짜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는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죄를 용서받고 세례를 받으십시오!” 요한이 선포한 내용은 대단히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 이것이 우리가 신앙하는 전부입니다. 신앙생활 하는가?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은 끝없는 시작의 삶을 사는 삶입니다.

 

모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입니까? 회개는 바로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돌렸던 그 등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다시금 관계를 겠다는 약속이고 몸을 완전히 돌려 하느님께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오시는 그를 맞이해야 하고 어떻게 그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돌아오십시오.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라는 이 짤막한 회개로의 권고 속에 대림의 의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느님돌아간다는 일,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질서 속으로 다시금 회귀한다는 일입니다. 세상은 있고 없음 잘남과 못남 높음과 낮음 능력과 무능력으로 가르고 등급을 나누지만 하느님의 질서는 오직 사랑에 관한 유일한 질서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랑의 질서입니까? 내어주고 바치고 나누고 손해 보는 바로 하느님 사랑의 질서입니다.

 

나의 편리와 이기와 끝없는 탐욕과 집착은 사랑의 모든 질서를 파괴합니다. 사실 내 인생의 가장 걸림돌은 내 자신입니다.

 

나보다 훌륭하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것은 단지 요한의 겸손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광야라는 험준함 앞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워낸 한 인간의 죽음인 셈입니다. 그는 완전히 죽었기에 완전히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으로만 남았습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듯, 회개가 없이는 새로운 생명도 없습니다. 새로운 탄생도 없습니다. 돌아서야 새로움이 생기고 죽어야 새 살이 납니다. 이번 성탄 우리의 유일한 관건은 오직 하나 우리의 회개뿐입니다.

 

대림초가 두 개가 밝혀졌습니다. 오늘 대림2주일에 희망 기대, 기다림 앞에서 서서 회개라는 단어가 다시금 내 안에 굳건히 자리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둡고 답답한 엄연한 인간 현실의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자기 자신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주변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리는 어려움 가운데 서로 의존합니다. 세상의 고통이 전하는 유일한 메시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뢰와 상호의존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살맛 나게 해준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안에 삶을 유지하는 거룩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엄한 인간들의 땅이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예수님의 꿈이고 우리의 꿈입니다. 이 꿈을 꾸며 인권주일을 보내면서 성탄을 기다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