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가두는 이것 (교종 프란치스코 미사 강론)

홈지기 2014.02.21 00:17:22

교종 프란치스코 2월 18일 미사 강론 중  


우리를 가두는 이것  

 

[...] 유혹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나요? 사도는 유혹은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고 우리의 정욕에서, 우리의 내적 나약함에서, 원죄가 우리 안에 남긴 상처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거기에서, 이 정욕에서 유혹이 옵니다. 신기하게 유혹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 가고 전염되며 스스로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커 간다는 것. 평온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커 가지요... 예수님 자신도 밀알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거기서 오지요, 유혹은 이 정욕에서 와요. 이상하게도 유혹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자라난다(커 간다)는 것, 전염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라난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처음에는 평온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점점 커 가지요... 예수님 자신도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걸 말씀하셨습니다. 밀이 자라면서 가라지도 원수가 씨를 뿌린 가라지도 자란다고요. 유혹은 자라납니다. 점점 커 가요. 그것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전체를 점령하고 말지요.

 

또한 유혹은 다른 사람을 동무 삼으려고 전염시킵니다. 이렇게 자라나고 전염시키면서 유혹은 우리를 쉽게 나갈 수 없는 상황 안에 가둡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제자들의 체험이지요. 열두 제자들은 배를 탈 때 빵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스승의 눈앞에서 서로 탓합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그런 말다툼에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들에게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이르시지요. 사도들은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잠시 더 다투지요. 빵을 가져오지 않은 탓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갇혀 있어서 하느님 말씀을 위한 자리와 시간과 빛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유혹 가운데 있을 때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듣지 않아요. 알아듣지 못해요. 예수님은 그래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들에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상기시키셔야 했지요. 유혹은 우리를 가두고 우리에게서 멀리 보는 능력을 없애 버리고 우리에게서 모든 지평을 닫아 버리며, 그렇게 해서 우리를 죄로 끌어가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유혹 가운데 있을 때는 오직 하느님 말씀만이, 예수님 말씀만이 우리를 구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지평을 열어 주지요....

그분은 항상 우리에게 유혹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예수님은 크신 분이에요. 단지 우리를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더 큰 신뢰를 주시기 때문이지요. 이 신뢰는 우리가 유혹 가운데 있을 때 큰 힘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토록 유혹을 받고 죄를 짓는 우리를 믿으시며 항상 지평을 열어 주십니다. 반대로 악마는 유혹으로 닫고 닫고 닫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탄 배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듭니다. 이런 종류의 상황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