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와 '보다'의 신비 - 성탄 밤미사 교종 강론

홈지기 2013.12.27 04:53:58

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이사야의 이 예언은 끊임없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특히 성탄의 밤 전례에서 들을 때 그러합니다. 이는 단지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사실만은 아닙니다. 우리 존재의 깊은 실제를 말해 주기 때문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걷는 백성이며 우리 주위에는 - 우리 안에도 - 어둠과 빛이 있습니다. 오늘 밤, 어둠의 영이 세상을 감싸고 있지만 항상 우리를 경탄하게 하고 놀라게 하는 사건이 새롭게 발생합니다. 곧 걷는 백성이 큰 빛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 신비, 걷다보다의 신비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빛입니다.

 

걷다. 이 동사는 우리에게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게 합니다. 곧 우리 주님이 어느 날 부르셔서 떠나라고, 당신이 가리키시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자기 고장에서 나가라고 하셨던 우리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이어져 온 구원사라는 그 긴 걸음의 여정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때부터 믿는 이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약속의 땅을 향해 순례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입니다. 이 역사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동반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계약에 항상 충실하십니다.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1요한 1,5). 그런데 백성에게는 빛의 순간들과 어둠의 순간들이, 충실과 불충실의 순간들이, 순종과 반역의 순간들이 교차합니다. 순례하는 백성의 순간들과 잘못을 범하는 백성의 순간들이 교차합니다.

 

우리 개인의 역사에서도 빛나는 순간들과 어두운 순간들이, 빛과 그늘이 교차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빛 속에서 걷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닫힌다면, 우리 안에 교만과 거짓과 자기 이익의 추구가 우세하다면 그때는 우리 안에 우리 주위에 어둠이 내립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 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1요한 2,11).

 

2. 이 밤, 지극히 밝은 빛의 다발처럼 사도의 알림이 울려옵니다.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세상에 나타난 은총은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요 참 인간이자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역사 안으로 오셨고 우리가 걷는 길에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어둠에서 해방하시고 우리에게 빛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은총이, 자비가, 아버지의 다정함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취하신 사랑이십니다. 지혜의 스승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하나의 이상, 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무참히도 멀리 있음을 아는 그런 이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천막을 치신 분, 삶과 역사의 의미이십니다.

 

3. 목동들은 이 천막을 본, 예수님 탄생의 알림을 받은 첫 번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양떼를 지키면서 밤을 새웠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 앞에서 머무릅시다. 침묵 속에 머무릅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심에 대해 그들과 함께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들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충실에 대한 찬미가 올라오도록 합시다.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낮추신 당신께 찬미를 드립니다. 당신은 거대한 분이시면서 스스로 작아지셨습니다. 당신은 부유하시면서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당신은 전능하시면서 스스로 약해지셨습니다.

 

이 밤에 복음의 기쁨을 나눕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우리 형제로 주셨습니다. 우리의 어둠 속의 빛으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되풀이하여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2,10). 저도 다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인내로우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여정에서 우리를 인도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어둠을 쫓는 빛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아멘.